맛과 식감, 그리고 현실

요즘 먹방이 참 많다. 
먹방이 아니더라도 음식, 요리, 혹은 맛집에 관련한 TV프로그램이 참 많다.
사람의 특성상, '먹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있기 마련이고, 또한 나아가서 '보다 맛있는 것' 혹은 '싸고 맛있는 것'을 찾는 것은 당연지사,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방송사들이 이 '음식'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참 안타깝다. 잘못된 한글 사용의 문제인건지, 아니면 여전히 '배를 채움'의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탓에 '맛'에 대해 부족한 접근을 하고 있는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문제인건지는 알 수 없으나, '맛'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참 많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고, 또한 '맛'의 느낌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참 많다.

많은 음식 프로그램에서, 특정 음식을 가져다가 그 식당의 방문객 혹은 캐스팅된 연예인에게 먹이고 '맛'을 표현해달라고 한다. (돈 주고 대본 줘서 그대로 읊어내는 경우를 제외하면) 많은 경우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곤 한다. 치킨을 먹고는 맛을 물어봤는데, 살이 쫄깃하다던지, 혹은 전복을 입에 넣고 씹었더니 아삭하더라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사전적 의미로 '맛'은 "음식 따위를 혀에 댈 때에 느끼는 달거나 쓰거나 시거나 짜거나 맵거나 한 감각"이다. 달리 말해, '혀'의 미각 세포를 통해 느껴지는 감각이 바로 '맛'인 것이다. 

쫄깃하다, 질기다, 연하다, 아삭하다 등의 표현은 혀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씹었을 때' 느껴지는 감각이다. 달리 말해, 이들은 치아(치근과 그 주변 잇몸 포함)의 신경 세포를 통해 느껴지는 감각이다. 이를 두어 사용하는 말은 따로 있다. 바로 '식감'이다. (일부 블로거들은 '치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식감에 해당하는 느낌은 씹을 때 치아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구강 피부조직 전부를 통해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치감'으로 한정짓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맛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변자가 "쫄깃하다, 아삭하다"는 대답을 하면, 방청객들이나 진행자들은 '맛있구나'는 표정과 리액션을 보낸다. 분명 '쫄깃'하거나 '아삭'한 느낌은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느낌이기에 '좋은'느낌으로 인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원 질문이었던 '맛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변은, '특별한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석되어야 한다. 씹히는 감각에 열중하느라 혀로 느끼는 감각에 소홀해진 것이다. 

'미식'의 정의를 쉽게 내릴 수는 없고, 나 또한 그런 경지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많은 경우, '미식'에는 '향'이 따르고,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맛'은 음식의 겉 표면에서 느껴지는 것과 한번 씹었을 때, 두번 씹었을 때의 맛이 다른 경우가 많다. 즉, 제대로 된 '맛'을 느끼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삼키기 위해 빨리 씹을 것이 아니라 씹고 뜯고 하는 과정을 최대한 느리게 하여 혀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느껴지는 맛은,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손길 하나하나가 모두 느껴진다. 그냥 먹으면 별반 다를 것 없는 김치찌개가, 천천히 음미하며 먹으면 돼지고기랑 김치를 볶아서 끓인 것인지 아니면 귀찮아서 한번에 물에 썰어넣고 끓인 것인지까지 모두 다 느껴진다. 찜기에 넣어 십오분만에 쪄낸 쌀밥인지, 아니면 냄비에 일일이 올려 지은 밥인지도 느껴진다. 중국쌀인지 한국쌀인지, 혹은 싸구려 재료인지 신선한 재료인지도 식당 주인이 일일이 설명하고 증명하지 않아도 내 입에서 다 느껴진다. 

조리시간이 긴 음식일수록 모든 맛을 느끼는 데 필요한 시간이 길다. 그러나 또한 양은 적어지고, 가격도 비싸진다. 빨리 먹기도 쉽지 않고, 잘 만들기도 쉽지 않으며,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적다. 대한민국 신규 자영업 중 상당수가 요식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먹는 장사'의 기본적 잠재력만 믿고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리시간 짧고, 많은 기술과 투자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빨리 먹고 나갈 수 있는 음식에 집중하게 된다. 배달도 해야하니 맛의 궁극을 이끌어내기보다 좀 식고 말라도 맛이 유지될 수 있는 그냥저냥의 맛에 집중하려 애쓴다. 

짧디 짧은 점심시간, 매년 실패하는 정부의 농산물 수급정책, 잊을만 하면 터지는 축산방역문제. 이러니 믿고 먹을 음식 없고, 빨리 씹어 삼키고 허기를 채운 뒤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다보니 먹는데 투자하는 돈이나 시간을 아껴야 하고, 그러다보니 배달음식을 주문한다. 맞벌이에 장 볼 시간도 없고, 장도 마트 직원이 대신 골라 배달시킨다. 반찬도 사먹고, 외식도 식구 사이에 의견이 갈리니 그냥 부페에 가서 해결한다. '맛'보다는 '무엇' 즉 음식의 종류에 더 집중한다. 옷 사는 데 스타일 같은 것 생각하지 않고 색깔과 종류(수트, 캐주얼, 스포츠 이런식)만 보고 할인매장에서 크기만 보고 집어드는 격이다. 

흥정과 밑작업을 요하는 재래시장은 죽고, 껍데기와 포장에 돈을 처바른 백화점이나 마트의 식품코너가 크는 이유다. 꽤 괜찮은 의도와 실력, 적당한 가격으로 오픈한 맛집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맛에 대한 관심이 없으니 맵거나 짜거나 달거나 시거나 강한 느낌만 느끼기를 원하고, 영양과 맛의 조화보다는 눈에 보이는 화려함만 찾으니까) 매니악한 식당이라는 혹평만 남긴 채 문을 닫는다. 광고와 소셜커머스 판촉이 난무하는 그저 그런 식당들이 넘쳐나고, 진짜 갈 만한 식당은 없다면서 식당 업주들의 부당이득을 지적한다.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와 문화는 모든 부분에서 '생존'이 걸린 문제처럼 치열함을 요한다. 치열함은 곧 '속도'와 동시에 '효율'을 따진다.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맛있지 않으면 맛이 없는 것이다. 삼키려면 씹어야 하니 씹을 때 별 느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맛을 느끼고 자시고 할 시간은 아껴야 하는 시간이고, 돈과 시간을 땅에 뿌리는 짓이고, 따라서 여유 있을 때나 하는 것이 된다. 

모두가 '여유'있는 삶을 누리길 원한다. 그런데 '여유'라는 것은, 시간이나 돈이 생존에 필요한 것 보다 조금 더 많아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지, 돈이나 시간이 남아돌아 어쩔 줄 몰라하는 상태가 아니다. 알콜을 간에 퍼붓고, 그거 해독하느라 하루종일 침대와 TV로 시간을 보내고, 정치와 경제 그리고 연예게의 가십에 열을 내어 흥분할 시간은 필요한 것이고, 코와 혀로 느껴지는 찰나의 느낌에 잠깐 집중해보는 것은 낭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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