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 세상의 가장자리

많은 사람들, 아니 지구상의 많은 존재들은 자신이 '중심'이 되고 싶어한다.
그 '중심'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따라 많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 정의할 때, 대부분의 이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혹은 비켜서고자 하는 가치관이 삶을 지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위의 정의에 포함될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세상의 중심은 어디일까? 마치 은하계의 중심에서 수많은 은하가 방사상으로 퍼져나가듯이, 세상의 중심은 수천 수만년 고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네트워크 기술이 없던 시절, 즉 세상에 수많은 다른 문화권이 존재하고 그들 각각이 서로를 알지 못하던 시절에는 과연 무엇이, 혹은 어디가 세상의 중심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은 모든 세상을 아우르는 하나의 '중심'이라는 것은 존재한다고 보기 힘들며, 결국 수많은 문화권, 다양한 정치시스템, 혹은 수많은 국가 등 여러 분류별로 각각의 중심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세상의 중심이 있다면 세상의 가장자리 또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중심'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관계 속에 존재하지만, 그 관계 속의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지향하는 것과는 거리가 좀 있는 요소 혹은 사상을 '가장자리'로 지칭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시적인 관점으로 하나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이 '관계'는 최소한 하나 이상의 구성요소를 포함하며, 따라서 중심과 가장자리(이 둘은 반드시 다를 필요는 없다)가 존재한다. 매우 일반화되어 있는 공동체의 경우 그 구성원의 수가 매우 많을 것이고, 또한 새롭게 생겨나는 공동체 혹은 시스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따라서 중심과 가장자리의 경계 또한 명확하며 각각의 위치 또한 매우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새롭게 생겨난 시스템의 경우, 그 중심과 가장자리의 경계 또는 그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는 구성원들이 해당 시스템 혹은 공동체의 성격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나아가 가장자리가 새로운 중심이 될 가능성 또한 높다.

학계로 뛰어들기 위해 학업에 열중하는 수많은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의 경우, 그 누구보다 세상의 '중심'이 되길 원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중에는 학계 또한 직업의 한 분야로 보고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위 정의를 단언할 수는 없으나, 표절과 모방에 더할 나위 없이 엄격하며, 사상, 주제, 방법론, 데이터, 분석 등등 수많은 하위요소들에 대한 창조성을 요구하는 학계의 특성상 해당 구성원들은 다음의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바로, 세상의 중심이라 보여지는 곳으로 남보다 빨리 열심히 달려가는 것과, 언젠가 중심이 될, 그러나 아직 보여지지 않은 새로운 '가장자리'를 찾아내는 길이다.

이미 방법과 방향이 상대적으로 뚜렷한 전자의 경우, 그 결과 또한 커다란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본인의 노력이 일정 수준을 만족하고 해당 분야의 박사인력 수요가 충분하다면 성공적으로 해당 '세상'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모든 방향, 방법, 게다가 안개 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 최종 '타깃'까지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자에 비해 훨씬 힘들 것이다. 게다가 찾아낸 분야가 블루오션일지, 혹은 떠다니는 쓰레기 한 뭉치 주워든 것일지에 대한 리스크 또한 매우 크다. 블루오션이라 하더라도 관련된 학문분야가 각광을 받아야만 비로소 해당 분야가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는 실로 매우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세상의 중심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기 쉽다. 결국 이는 정치나 경영 등 관련된 분야로의 진출을 꾀하는 주요한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문만으로는 원래 목표였던 세상의 중심이 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부수적인 분야를 연계시켜 그 '중심'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이 경우, 결과론적으로는 학문의 순수성과 인생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 이 둘이 서로 구축효과를 가진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는 순수 학문만으로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물론 어렵지만, 놀랍게도 학문의 순수성과 인생의 목표 성취 이 두 가지를 양립시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학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이는 세상을 권력과 욕망이라는 틀로 나누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고 세상의 다양성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학문하는 사람이 취해야 하는 삶의 길은 과연 어디여야 할 지 그 답은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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